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 독일 (문단 편집) ===== 1942년 - 1943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80px-Second_World_War_Europe_06_1942_de.svg.png|width=100%]]|| || 1942년 6월의 전황.[* [[청색 작전]] 직전의 전황이다.] || 이듬해인 1942년 봄과 여름에 독일은 다시 전세를 회복했다. 소련의 남부를 공략하여 석유와 기타 지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블라우 작전]](청색 작전)이 진격 속도를 높이며 성공을 거두었지만, 무난히 점령할 것이라 생각했던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의 강력한 저항에 붙들리고 말았다([[스탈린그라드 전투]]). 결국 여기서 소련군의 역포위에 걸려 자국 군대와 동맹국 군대를 포함하여 수십 만의 인명 손실이 발생했고 장비의 손실도 막대했다.[* 사실 정치적 의미로 스탈린그라드를 차지하려던 오판 말고도 이미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었는데, 전선이 두 곳이나 생겨버린 것도 있고 무엇보다 히틀러는 소련 곳곳의 작은 마을까지 점령하려고 들었다가 오히려 병력을 지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애초에 히틀러가 불가침 조약을 맺었던 소련의 뒤통수를 친 것이 문제였다. 러시아는 그래도 석유 등 독일 내에서 자체 생산이 힘든 천연자원 등을 보내줘 전쟁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문제점은 이들까지 등을 돌렸으니 엄청난 실수다.] 이로써 동부전선의 균형추는 소련 쪽으로 기울어 버렸다. 그러는 동안 이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파견한 [[에르빈 롬멜]]의 [[북아프리카]] 군단도 지나치게 길어진 보급선과 영국해군의 지중해 장악으로 힘을 잃어버렸고 이를 기다린 몽고메리의 제8군이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독일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전선이 붕괴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횃불작전을 펼쳐 튀니지를 점령하며 북아프리카군단 전체가 영국군과 미군에 섬멸 당하며 북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지중해 전선에서 완전히 연합국에게 밀리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